무조건 반말을 해야 한다
화분 1971
하길종 감독의 <화분>은 왜 푸른집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푸르지 않은 집에, 여자 셋과 남자가 사는 데 그 집에 또 다른 젊은 남자가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현마(남궁원)와 그의 아내 애란(최지희)이 살고있고 애란의 여동생 미란(윤소라)도 같이 산다. 그 집에 식모(여운계)도 있다. 암튼 이 시절의 영화를 보면 가난하던 여유가 있던 식모는 필수 가족의 구성원 쯤이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현마가 한 남자를 데리고 오는데 이름은 단주(하명중), 제법 잘생겼다.

여기서 관계가 좀 복잡해진다. 단주가 등장하기 전 푸른집의 인간 관계는 애란과 식모가 모두 현마를 사랑하고 어찌보면 미란마저도 현마를 애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현마는 정작 단주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여기서 단주가 나타나자 정신을 차린(?) 미란은 단주를 좋아하게 되고, 단주도 미란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단주는 동시에 현마도 사랑하는 것 같다. 단주와 미란의 관계를 눈치 챈 현마는 미친듯 분노하고 그러니까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폭력을 행사한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남자라는 존재는 푸른집에서 절대 권력자로 설정된다. 그에 비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단주는 나중에 푸른집의 창고에 버려지게 되는데 마치 예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도 나오는데 의도된 건지는 모르겠다.

말은 그렇다. 이 푸른집을 통해 당시 유신을 은유했다고. 그만큼 폭압적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그 공간과 그 권력자는 정말 하루 아침에 망한다. 말 그대로 정말 하루 아침이다. 전날 밤에는 뻑적지근한 가든 파티를 열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빚쟁이들이 몰려와 집 안의 온갖 물건들을 빼앗기게 된다. 충격적인 건 정말 누런 물이 출렁이는 요강까지 가져가는 빚쟁이가 있었다는 거. 그리고 저 멀리 애란으로 짐작되는 여자가 요강! 이라고 소리친다. 진심 아까웠던듯.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남궁원과 하명중의 동성애 관계는 지금으로도 파격적일 걸 생각하면 당시 어떻게 설정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배우를 어떻게 설득했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그 둘이 게이 커플로도 어느 정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좀 더 분위기가 묘하다. 야하진 않지만 둘이 몸을 비벼대는 장면도 좀 나오고 나중에는 남궁원이 하명중의 뒷목을 (마치 뱀파이어가 피를 빨듯) 물어버리는 나름 기괴하게 애로틱한 장면도 나온다. 영화를 다 보면 질투에 미친 남궁원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참, 영화의 처음. 미란이 늦은 생리를 하고 욕조에 붉은 물이 있는걸 보고 언니라는 작자가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오미자물이라느니 화챗물이라느니 웃으며 떠벌이는 장면도 요강 절도만큼이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일로 모욕감을 느낀 미란이 집을 나가고 그 뒤를 단주가 쫓으며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데...

by nixon | 2018/06/11 00:06 | 영화 스크랩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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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발대사 at 2018/07/16 23:31
이거 파졸리니의 "테오레마" 표절한 거라고 하더라....

과거 하길종감독을 거의 신성시하던 입장에서 이 정보를 알고 엄청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Commented by nixon at 2018/07/16 23:46
그런가. 나도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이 영화... 그렇게까지 좋진 않아서.
Commented by 먹깨비 at 2018/07/18 01:44
원작소설이 이효석의 '화분'이다. 예전에 한국문학전집에 수록된 걸 읽었는데 일제시대에 이렇게 에로틱한 작품이 나왔다는 걸 알고 약간 놀랐었다.
남자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이라던가 푸른집이라던가 오미자물 해프닝이나 전반적인 인물 관계는 소설과 동일한 것 같다.
거의 30년 전에 읽었는데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꽤 충격적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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