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반말을 해야 한다
4개의 알파벳 (작성 중)
여기저기서 MBTI 밈은 많이 보지만, 내 주위에서 나의 MBTI가 뭐냐는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유형이 뭔지 늘 잊고있었는데, 딱 한 번 질문을 받았다. "팀장님의 MBTI는 뭔가요?" 기억이 안난다고 하자, 검사 링크가 도착했다. 다시 하니 ENFP였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이게 나왔던 것 같다. 같은 유형의 유명인으로 로버트 다우니 Jr.를 본 기억이 있으니까. (같은 유형의 유명인이라니,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나에게 질문한 사람에게 ENFP라고 하니, 아 엔프피셨구나, 라면서 이런저런 말을 해줬다. 난 이걸 엔프피라고 읽는구나, 라고 알게 된 후로 비로소 외울 수 있었다. 나의 MBTI는 ENFP로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흔한 유형이구나.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군.)

그런데 내가 정말 I가 아니고 E일까? 자기소개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체크했다. 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고 체크했다. 아마 그래서 E가 나왔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게 정말 맞나? TV에 나온 어떤 유명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사회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E는 사회화의 결과일 것이다. 내성의 극한을 달리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그렇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경험을 쌓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래야만 하는 자리가 생기고,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들이 중첩되면 난 학습을 하고 훈련하며 예전에는 잘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이 끔찍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E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난 원래는 I인걸까? 나는 변하지 않고 그렇게 사회화 되었을 뿐이니까. 무료 말고 유료로 치밀한 검사를 하면 난 I 쪽인걸까? 그런데 그렇다면 사회화는 무엇인가. 사회화되어서 내 행동양식이 변한 건 내가 변한게 아닌 것인가? 왜 그것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하지. 그것도 이미 충분히 변한 것 아닌가. 사람이 변한다는 거에 대해 그렇게까지 박하게 굴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전문가의 말도 괜히 전문가의 말은 아니겠지. 난 I인가 E인가. 그래서 지금 다시 해봤더니 INTP가 나왔다. 정말 이게 뭐람. 

그 다음 S와 N 사이에서는 늘 N이 나왔던 것 같다. 경험보다는 직관에 의지하는 편이라는 것인데, 되게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이라 별로긴 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나는 내 자신을 잘 체계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마지막 J와 P 단계와도 통하는데,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뭔가를 차근차근 해나간다기 보다는 그때 닥쳐 더이상 안할 수가 없을 때 어찌어찌 하고 마는 그런 유형이 맞다. 그렇게 체계화에 게으르다보니 내 경험을 내가 내재화해서 오답노트를 만들고 그로 인해 한단계 한단계 발전해나가는 마지막에 닥치면 한다, 체크! 제자리에 물건을 잘 두지 않는다, 체크! 이건 정말 고민 없이 체크한 것들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마지막 알파벳이 J가 나올 수 없다. 그건 무조건 P다. 사실 어떤 일이 있어서 얼마 전에 이 검사를 또 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ENTP가 나왔다. 이 글에만 언급된 나의 MBTI가 세 가지. 이 중 두번째와 네번째는 변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그건 N와 P로 픽스해도 괜찮을 것 같다. 

세 번째 자리의 알파벳. T와 F의 차이. T는 논리적 F는 감정적이란다. 만약 10년 전에 이 검사를 했다면 난 백프로 굉장히 편향된 T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을 함에 있어서 논리보다 상대의 감정이 중요하다. 여기에 어떤 체크를 할 것인가. 예전에는 무조건 논리였으나, 논리가 정말 모두 다인가, 라는 생각은 점점 하게 된다. 그 순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논리로 상대를 꺾든, 그렇게 노력하든 그게 정답인가. 그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왜 우리는 다쳐가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가. 그 결정의 수위가 얼마나 중요함에 따라 어떤 것은 논리가 될 수도 어떤 것은 감정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나는 그렇다. 이도 학습과 경험의 결과다. 그러고보니 위에서 난 학습과 경험으로 인해 체계화가 되지 않는 인간이라고 했는데, 이런건 또 학습과 경험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를 않네. 

결국 나의 유형은 (E/I)N(T/F)P 라고 어디에도 통용되지 않는 복잡한 방식으로 쓸 수 있다. 모두 4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4개의 혈액형을 어떻게 인간 유형을 설정할 수 있는가, 비웃지만 이제는 MBTI다. 물론 수십개의 질문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16가지나 되는 유형으로 구분해주기 때문에 혈액형과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그럴싸한 시스템이긴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그렇지 않던가. 이런 설문을 할 때 완벽하게 나의 모습을 투영하던가.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내가 되고 싶어하는 쪽으로 체크를 하게 되지도 않던가. 누군가 나를 24시간 1년동안 CCTV로 촬영해서 그 결과를 데이터화 하고 분석한다면 완벽한 MBTI가 나올 수 있겠지만, 자신의 답에 의존하는 방식이라니, 거기서부터 회의적이다. ...
by nixon | 2022/05/22 02:08 | 트랙백 | 덧글(0)
도시, 전주
전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0년이었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로도 전주에는 (정확하게 세보지는 못했지만) 10번은 넘게 갔을 것이다. 그 중 대부분은 역시 영화제 기간이었다. 그렇다고 전주에서 영화를 열심히 보는 것은 또 아니다. 

물론 2000년, 그러니까 첫 방문 때는 영화를 섭렵하겠다는 끓는 피로 영화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 전주로 향했다. 정성일, 김소영, 김준양이 프로그래머로 있었던 1회에는 그야말로 신기한 영화들이 많았다. 아마 그들도 부산, 부천과 차별을 주기 위해 관객에게 어디 한 번 신기함을 당해봐라, 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몰로흐>는 히틀러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는데 초점이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는 꿈결 같은 영상의 작품이었고, 그래서인가 나 포함 함께 본 3명의 일행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빅 슬립을 했고, 서로 깨어있던 곳의 이야기를 조합해도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걸 보면 모두들 잠에 든 시간이 더 많았던 그런 영화 감상 혹은 겸험을 했고,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열어본 뿌듯한 경험이 있음에도, 퀘이 형제라는 걸 처음 들어 도대체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악어의 거리>를 보면서 그 어두움을 체험했으며, 류승완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고 GV를 위해 정성일 평론가가 들어오는데, 나와 일행은 GV 시작 전에 퇴장하려했고, 하필이면 극장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우리 3명 때문에 되게 삐걱대자, 정성일이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으로 우리 등 뒤에 대고 이야기를 해 화끈 거렸던 또 하나의 경험과 함께,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후 정성일 평론가에게 당시 이야기를 하자 기억하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있는, 크리스티앙 부스타니의 '과거에서 온 도시' 시리즈를 보며 이런 영상의 영화라는 것도 있구나 하는 또 하나의 체험, 서울로 올라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전북대 문화관(당시에는 전북대에도 공식 상영장소가 있었다)에서 본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은 처음에는 이 영화가 왜 공포영화인가 했다가 중반 이후로 그곳에 모인 수많은 관객들이 일동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비명의 물결타기를 해댔고, 영화를 보고 전주역까지 걸어가는 늦은 밤, 우리는 '끼리끼리'(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를 외치며 낄낄댔고, 그렇게 서울로 올라갔던, 그러고보니 2000년의 전주는 영화를 체험할 수 있게 했던 도시였다. 그 때는 그랬다. 열심히 봤다. 그리고 전주가 미식의 도시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전북대 근처 분식집에서 비빔밥을 먹으면서, 이게 전주비빔밥이래, 이랬다.

아마 그 후로도 몇년간 대학 선배 혹은 후배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으면서 나름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려 애썼고, 하지만 이상하게 1회만큼의 인상적인 개별 기억은 남지 않았다. 그러다 D와 함께 전주를 찾으면서, 그때 즈음에는 한번쯤은 가본 유명한 비빔밥집, 유명한 콩나물국밥집 이런거 말고 현지인들이 소개하는 방대한 식당 리스트를 손에 쥐고 내려가면서부터 전주는 더이상 영화의 도시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왜 굳이 영화제 기간에 갔는가. 그러게. 하지만 영화제가 열리는 전주는 아무래도 축제 분위기가 있었고, 늘 4월 말에서 노동절을 사이에 둔 5월 초까지, 가장 날이 좋을 때였다. 여행하기 좋았다. 그리고 영화라는 백그라운드가 있는 느낌이 괜찮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영화의 거리 주변 음식 말고 조금 멀리 떨어진 식당들을 찾았는데 그때만해도 '백일홍'은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만두, 찐빵집이었다. 중화산동의 '깐쇼새우'도 단골이었고, 모악산 근방의 청국장집도 좋아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전라북도 구도청 자리의 백반집도 많이 들락날락했다. 그러고보니 이젠 누구도 전주에서 백반을 먹지 않는 것 같다. 

코로나로 여행이 제한되던 시기가 지나고 오랜만에 전주를 찾았다. 이번에는 출장으로 방문했기 때문에 영화제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따라가긴 했지만, 그 외에는 도시, 전주를 돌아다녔다. 

전주도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지방 도시였다. 객사길을 제외하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PNB 풍년제과 4거리만 봐도 풍년제과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텅 비어 임대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이곳뿐 아니라 전주 대로변의 많은 건물들이 비어있었는데, 불과 3년 전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방 도시의 힘듦에 코로나가 더해진 결과일듯 짐작한다. 도착 첫날에는 서울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물짜장을 먹기 위해 이번에도 새로운 중국집을 찾았다. 전주에서 먹는 네 번째 물짜장(일품향, 홍콩반점, 노벨반점, 그리고 대보장)인데 어째 모든 물짜장의 맛이 다 달랐다. 물짜장은 표준 레시피 같은 게 없는 것인가. 이번에 먹은 대보장의 물짜장은 색이 좀 더 노랗고 후추향이 강했다. 이미 관광객에게도 알려졌는지 영화제를 찾은 것 같은 외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절반 있었고 그로인해 만석이 되어 현지인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꽤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내 뒤에서 대기하고 서있었다. 대보장 앞은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탁 트인 공간에 새로 지은 것 같은 전통 건물이 있었는데, 들여다보니 전라감영이란다. 예전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없었던 건 확실한데, 그럼 이 곳은 예전에 뭐하던 곳이었더라. 알고보니 구도청부지였다고 한다. 그때는 예전 건물이 있었던가? 공사중 펜스가 쳐져 있었나? 이미 기억이 희미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오래전부터 단골이었던, 홈플러스 앞의 '야식정통우동'을 찾았다. 이 집은 오후 6시부터 밤을 꼴딱 세서 장사하는 곳인데 그러고보니 코로나 시국때는 어땠으려나. 메뉴는 십수년 전과 똑같다. 오래된 방식의 우동과 감자가 크게크게 들어간 짜장면, 그리고 바로 싸주는 김밥.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맛은 예전 그대로였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녁인가 싶겠지만, 앞에서 말했듯 영화제 일정을 중간중간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이야기는 굳이 이 곳에서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건 회사 출장 복명서에 이미 써놨다. 

둘째날은 좀 걸었는데, 중앙시장 쪽을 찾았다. 실은 근처 몇몇 리스트를 손에 쥐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시장 안 호떡집이었다. 할머니 두 분이 찹쌀로 반죽한 호떡을 내놓는 곳인데 바로 호떡을 지져 가위로 잘라 스뎅 접시에 내줬다. 그 곳은 호떡과 함께 오뎅이 유명한데, 처음 앉았을때만 해도 오뎅에는 별 생각 없어 D만 오뎅을 주문하고 난 "전 됐어요" 그랬다. 그랬더니 할머니 중 한 분이 '안 먹는다고?' 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어떤 말을 하셨고, 난 속으로, 먹는 건 내 마음이지, 하며 궁시렁댔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텅 비어있던 작은 노점 자리에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들어와 앉았다. 대보장과는 달리 모두 현지인으로 보였다. 나이 드신 분, 어린이, 이런 손님들이 왔었으니까. 옆 가게에서 채소를 팔았는데 호떡집 앞에까지 파는 물건을 내놓는 바람에 호떡 집 주인장 분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보였다. 그러는 사이 호떡이 나왔고 오뎅이 나왔는데, 이 오뎅이, 일반적으로 먹던 오뎅이 아니었다. 되게 얆고 작게 손질된 모양의 오뎅이었는데, 작은 그릇에 맑은 국물이 있고 그 오뎅을 탁 풀어 놓으니 경쾌하게 (오뎅이 경쾌하다?) 국물에 조각조각 퍼지는데, 문득 아주 먹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저도 주세요" 했다가 할머니에게 "아까는 안시키더니 (쯔쯔쯔)" 라는 말을 듣고 터프하게 오뎅을 건네받았다. 먹으니, 맛있더라. 놀랍게도 이번 전주에서 먹은 음식 베스트 3에 든다. 그때가 되니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이상하게 D와 내가 빈 음식점에 들어가있으면 손님이 꾸준히 들어오는 마법을 자주 경험한다. 그 이후로 계속 걷다, 계획했던 '태평집'까지는 가지 못하고 중간 어디쯤에서 발견한, 그런데 사람이 무척 많았던 '전주 칼국수'집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걸어 올라온 웨딩거리 어디쯤에서 '노매딕 브루어리'를 발견하게 된다. D가 일찌감치 찾아논 곳이기도 했고, 전주에는 '거북선 브루잉'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영화의 거리에서는 사라져 아쉬웠는데, 눈 앞에 떡 하니 서있는 '노매딕 브루어리'는 아주 영롱했다. 옛날 만화 보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사람의 눈동자 같은 거 있지 않은가. 아마도 내 내면의 눈동자가 필시 그랬으리라. 한쪽은 양조 공간으로 브루잉 설비가 가득했고 한 쪽은 손님을 받는 홀이었다. 그러나 문은 저녁에 연다고. 안쪽 어둑하게 보이는 냉장고 안에 들어가있는 먹음직스러운 캔이라도 산다고 들어가볼까 했는데, 외국인 한 명이 계속 왔다갔다 하는 모양새가 괜히 들어갔다 말도 안통하고 허둥댈 거 같아 저녁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왜 갑자기 시간이 튀느냐고 한다면, 위에 말했든 중간중간 영화제 일정은 건너뛰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온 노매딕은 홀에 사람이 가득한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전주의 많은 공간이 죽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만큼은 자리가 없어 대기가 걸릴 정도였다. 누가 외지인이고 누가 현지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왁자한 펍 분위기가 제대로였고, 서빙도 프로페셔널했으며, 자체 생산 맥주들도 모두 맛이 좋았다. 시그니처인 노메디카(아메리칸 IPA)와 글램핑(크림 에일)으로 시작했다. 기분좋은 홉 향이 입에 찼다. 그 다음은 죠츠(레몬그라스 에일)와 전주 배가 들어갔다는 페얼 오브 페어스(사워 에일). 날카롭지 않은 신 맛이 일품이다. 그날은 영수증 테이블 '코트 야드'라고 불리는, 건물과 건물 사이 야외 자리에 앉았는데 조명도 없는, 손님들이 그닥 선호하는 자리는 아닌 것 같았으나 D와 나는 만족했다. 약간 서늘한 봄 밤과 어울리는 맥주였다. 양파링과 피자를 안주겸 저녁으로 먹었는데 이도 모두 훌륭했다. D가 크래프트 맥줏집을 잘 안가는 이유 중 하나가 맥주에 공을 들이는 것만큼 음식을 제대로 하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지론, 그러나 이 곳은 음식도 좋았다. 요식업에 일가견이 있는 D도 인정했다. 한껏 업 된 나는 양조 설비를 배경으로 서서 맥주를 마시는 척하며 사진을 남기는 저레벨 주접을 펼쳤고, 살짝 취해 기분좋게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노매딕이 올해 전주 베스트 1이다. 오뎅은 3이다. 그러면 2는 뭐지.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전라북도청 근처 고깃집이었다. 영화의 거리에서도 제법 거리가 되는 술집과 식당으로 빼곡한 구역이다. 이 고깃집이 점심에 내놓는 육회비빔밥이 일품이라는 소문에 찾은 거였는데, 맞다 이 육회비빔밥이 베스트 2다. 정육식당에서 내놓는 육회가 어찌나 푸짐하던지, 만족스럽게 전주의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날 오전에는 이번 전주 방문 처음으로 한옥 마을을 걸었다. 전동성당은 대대적인 공사중이었고, 어린이날을 맞아 사람들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오전이라 아직은 덜 붐비는듯 했지만 베테랑 칼국수는 이미 웨이팅이 시작됐다. 그래도 코로나 효과인지 길거리 음식이 많이 줄어있어 덜 유원지스러웠달까. 그렇게 한옥마을을 구석구석 들어가다보면 늘 닿는 곳이 향교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음에도 향교까지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과 정원에서 아무리 쉬어도 들어오는 사람들은 몇 없다. 좋아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경기전도 그렇게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였다. 여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평상에 드러누워 쉬기 좋았다. 그리 크진 않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대밭도 좋아했다. 간사하게도 유료화된 이후로는 들어가본 적이 없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전주에 대한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제 말고도 전주를 방문한 건 모두 5번이다. 그때마다 함께 간 사람들이 모두 다르다. 영화제가 이미 20년이 넘었으니 전주를 간 건 총 10번 정도가 아니라 15번도 넘을 것 같다. 명실상부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다. 그러면서 생각난 또 하나는, 첫 전주 방문이 어쩌면 2000년 이전일지도 모르겠다는 것. 지금은 연락이 끊긴 중학교 친구 Y와 남해 여행을 한적이 있는데, 밤에 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즉흥적으로 전주에 들른 적이 있다. 날도 늦었는데 전주에 들러 비빔밥이나 먹고 다음날 아침에 올라갈까? 그랬던 반나절의 전주 여행이 있었다. 결국 밤에 문을 연 식당을 수소문해 겨우 뭔가를 먹고 여관방에서 잔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때가 정확히 몇년도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마지막으로 동포만두 이야기를 하고 끝내자. 위에서 이야기 한, 현지 식당 정보 리스트에는 만두는 동포만두, 찐빵은 백일홍, 이라는 말이 써있었다. 그 말대로 동포만두는 만두가 맛있었고 백일홍은 찐빵이 맛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방문하는 족족 두 집 모두 방문했는데 (혹은 노력했는데) 어느 해인가, 동포만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백일홍에서 만두와 찐빵 모두를 해결한다. 물론 백일홍 만두도 맛있다. 그럼에도 백일홍과 그리 멀지 않은 코너집에 자리잡은 동포만두에서 김을 풀풀 날리며 만두를 쪄내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그 집 주인이 어디 다른 곳에 차렸나 싶어 검색을 해봐도 쉽게 정보가 뜨지 않는다. 그냥 사라진 집 중 하나일 뿐인데 이상하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전주 미식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절대적인 숫자로 놓고 보면 맛있는 식당은 서울이 훨씬 많을 것이다. 혹은 같은 음식이라도 전주에서 먹었기 때문에 후하게 받아들인 것도 있을 것이다. 동포만두의 만두도 서울 어디쯤에서 사먹는 그런 만두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걸 냉정하게 객관화하는 것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전주는 나에게 미식의 도시로 각인되어 갈때마다 새로운 식당을 가지만 높은 확률로 성공하는,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도시이고 별일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작 데이터화하면 혀와 뇌가 불일치하는 거짓이라 들통날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런다해도 어떠한가. 그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고, 그러나 나에게는 많은 득을 주지 않는가. 그건 즐거운 일이다. 
by nixon | 2022/05/21 19:35 | 트랙백 | 덧글(0)
어떤 주말
집이 출퇴근하기 먼 곳에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말이 있다. 주말에는 뭐하면서 지내세요? 그 질문에는 서울에 나오기 힘드니 그냥 집에만 있는거 아닌가? 집에 있으면 전원 생활을 뭘 하는가? 혹은 그럼에도 서울에 나오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데? 등등의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질문에 대해 매뉴얼화 된 답변이 있는데, "그냥 하루 나오고 하루는 집에서 쉬어요." 너무 적당하고 간결한 답변이라 상대방은 후속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혹시나 후속 질문을 하고싶었던 이들을 위해, 아래 글은 "그냥 하루 나오는", 그 주말 중 최근 토요일에 대한 이야기다. 

D와 H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D를 먼저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고, 이럴 때 먹는 곳 조사는 늘 D가 한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한다. 이번에 찾은 식당은 장미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있는 동남아 음식점이란다. 뚝섬역에서 내리니 장미 아파트가 바로 보였다. 잘 알려진 오래된 아파트다. 재개발을 기대하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그 가격이 20억대가 넘어가더라도 어쩐지 푸근해지는 구석이 있다. 오랜 시간 아파트와 함께 있었던 나무들이 이미 울창하고, 아파트는 도색을 새로 했다고 해도 오래됨을 감추지 못하며, 지하 주차장이 없어 지상에 다닥다닥 수평 주차해놓은 차들의 고단한 행렬이 있다. 아파트와 도로의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에는 오래된 벽화가 그려져 있고, 수위실 앞에 놓인 바리케이트 같은 것들도 이미 낡아있다. 그런 곳에 서있는 고급스러운 차량들이 다소 이질감 느껴질 정도다. 그 담벼락을 따라 한번 한 번 꺾어 쭉 걸어가면 꽤 거대한 장미 아파트 상가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의 입구, 그리고 지하 식당가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린 종합 간판은 낡음을 전혀 피하려하지 않았다. 내려가니, 사실 너무 놀라웠는데 그 오래되고 정돈되지 않은 곳에 상가가 무질서하게 가득했다. 도대체 그 넓고 어지러운 곳 어디로 가야 우리가 먹기로 한 그 식당이 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진짜 오래된 가게도 있는가 하면, 젊은 사람들이 줄서있는 카츠 집도 있고, 나름 유명한 맛집이라 알고 있던 곳의 간판도 무심하게 저 멀리 걸려있었다. 이촌동이나 반포동의 오래된 상가건물 지하를 가봤었지만 이런 혼돈은 처음 봤다. 이런 곳도 있는 거겠지. 어쨌든 겨우 식당을 찾았고, 식사는 그런데로 맛있게 했고, 주인장은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친절했다. 

알렉스 프레거 전시를 보기 위해 나온 길이었다. 롯데뮤지엄 근처에서 H를 마저 만났고,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되느니 하는 판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롯데뮤지엄에는 사람이 없었다. 알렉스 프레거는 몰랐던 사진 작가였고, H가 나의 무식함을 한탄하며 "너의 교양을 올려주마", 며 가자고 한 곳이었다. 미술 전시를 간간이 가는데,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물론 인상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뭐뭐' 전, 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뭐뭐'의 대표작은 슥 빠져있는 경우가 많아 쓰읍, 입맛을 다시고 출구를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알렉스 프레거 '빅웨스트' 전시는 그야말로 그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빼곡하게 갖다놓았다. 한적한 관람 동선도 물론 좋았고. 알렉스 프레거는 본인 을 '연출가'로 불러달라 할 정도로 모든 사진은 계산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의상과 헤어, 분장 세팅을 한 사람(들, 많게는 300여 명)이 설계된 세트 안에서 포징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눌러댄 수많은 셔터 중 하나가 내 앞의 지금 이 작품이겠지. 콘트라스트의 스펙트럼이 매우 확연하고 색감 또한 강렬하나, 동시에 레트로의 느낌이라 날카로운 느낌 없이 되려 푸근했다. 첫 인상은 영화 스틸 같다는 것이었지만, 볼수록 영화 스틸보다도 '인공적인 순간'을 잡아냈다. 인위적이나 그렇게 만들어낸 만듦새가 훌륭하고 내 취향이라 끝까지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 대부분의 프레거 작품에 사람이 등장하나 황량한 벌판에 우뚝 선 집 한 채가 맹렬하게 불에 타는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배경의 산은 어두워 검은색으로만 보이고, 하늘 왼쪽에는 하현달이 떠있다. 하늘 빛도 짙어 늦은 저녁 혹은 이른 새벽 같은데 집의 차양 그림자를 보면 해가 제법 높이 떠있다. 좀처럼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다. 위로 기울어진 6월 경의 하현달이 산 바로 위에 있으니 뜨거나 지고 있는 중일텐데, 안타깝게도 하현달은 자정경에 떠서 정오 쯤 진다. 뜨는 중이라면 새벽 1시, 지는 중이라면 오전 11시 경일텐데, 두 시간 모두 사진의 밝기와 맞지 않는다. 프레거의 사진 속 하늘에는 새나 비행기가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포착일까 합성일까. 후자라면 이 달 역시 그렇게 넣은 거겠지. 아니면 백야가 일어나는 곳에서는 저런 모습을 포착할 수도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전반적으로 낯선 분위기는 지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저 불타는 집 안에는 처음부터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을 것 같다. 그저 불 타기 위해 지어진 집이라는 아이러니. 이런 것들이 모여 나를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퇴장 직전 볼 수 있는 2016년 작품 <박수>는 동영상인데, (늘 그렇듯) 세팅된 사람들이 객석에 앉아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적으로 박수를 치는 대형 작품이다. 너무 노골적인데 그럼에도 위로가 되더라. 이 작품은 당시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도 걸렸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하는 순간, 광화문 어느 전광판에서 이 작품이 보인다면 꽤 근사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끝이란 건 그렇게 극적으로 오지 않는다. 지금도 야외 마스크는 해제되었으나, 확진자 수는 2, 3만을 넘고 있으니. 

버스를 타고 세종대학교 근처에 있는 수제 소시지 + 크래프트 맥주 탭하우스에 갔다. 바에 앉아 3명의 중년 남자들은 메뉴판에 있는 모든 종류의 소시지를 먹었고, 맥주도 많이 마셔댔다. 소시지는 종류별로 맛이 워낙 다양해 취향을 탈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좋았고, 탭 리스트도 준수했다. 자체 브루어리는 없는지, 안동맥주와 콜라보한 자체 레시피의 알빠냥이라는 밀맥주로 시작했다. 소시지와 잘 어울리는 잘 만든 맥주더라. 그렇게 먹다보니 서비스 디저트가 나왔다. 그만큼 많이 먹었다는 뜻이겠지. 어두워지기 전, 부른 배를 안고 아직은 열려있는 근처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했다. 어린이회관을 거쳐 어린이대공원으로 나갔는데, 어린이회관은 정말 내가 어린이일적 이후에는 처음 가보는 것 같았다. 건물 외관은 여전하더라. 지금도 그 안에는 과학 전시를 하고 있으려나. 어린이대공원 무료 개방한 후로는 처음 가보는 거였고, 이미 날이 따뜻해져 대형 분수가 작동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많이 보였다. 분수에 들락날락하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의외로 늘 즐겁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다고 어린이대공원 후문께에 있는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는데 거기서 떡볶이를 마지막으로 먹을래? 라고 누군가 제안해서, 소시지를 그렇게 먹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로 그 제안을 모두 동의했고, 줄 서서 떡볶이까지 먹고 말았다. 그것이 이날, 토요일의 마지막 경로였다. 

FAQ에 답하는 것처럼, 아무 토요일에 대해 말하는 척 해놓고 실은 되게 부지런히 다닌 토요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텐데 그 생각이 맞다. 이런 토요일도 있고, 오늘처럼 집은 벗어났지만 양수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딘가의 카페에 앉아 원고만 두들기고 있는 토요일도 있다. 그런 토요일보다는 바지런한 토요일이 이야기하긴 더 재밌지 않은가. 듣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by nixon | 2022/05/17 00:25 | 트랙백 | 덧글(3)
모두 거짓말을 한다
휴 로리 주연의 <닥터 하우스>라는 TV 시리즈가 있었다. 미드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다. 그는 진단학 전공의로 탐정처럼 환자의 질환이 무엇인지 에피소드 내내 추리하고 간파한다. 그러는 그에게 명언이 하나 있으니, 에브리바디 라이즈, 모두 거짓말을 한다, 는 것. 그는 환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모든 환자는 의사에게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환자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의사에게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하긴 돈 내고 혼나는 환자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병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인정하면 자신의 잘못이 될 것 같으니까? 그래도 의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자신에게만 불리한데 왜 그럴까. 사실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러나 닥터 하우스 입장에서는 그 진실이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말했겠지. 에브리바디 라이즈라고. 심지어 그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아직도 판매되는 중이다.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같은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경험한다. 동일한 경험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취사 선택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 상황을 그렇게 인지한다. 그리고 그 둘은 자신이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믿는다. 그 다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론낸다. 이 단계의 마지막, 그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일이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표현한다. 말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약간 내 입장에서 말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난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이 정도면 됐지, 이럴 것이다. 자, 여기까지 왔을 때 같은 상황을 경험한 두 명의 사람에게 각각 듣는 한 명의 사람은 완전히 다른 말을 양쪽에서 듣게 된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혹은 모두 진실을 말한다. 경험과 인식, 그에 대한 생각과 결론,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의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을 타고 넘어갈수록 다른 이야기가 되듯, 나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 수록 다른 경험으로 남듯, 같은 경험이 각자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각도는 생각보다 둔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조차도 매우 단순화된 버전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해 관련된 4명의 사람에게 각각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의 이야기는 빈틈을 메꾸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고, 묘하게 뉘앙스만 다르기도 하고, 그렇게 다채로웠다. 그 다른 뉘앙스에 대해서는 회사 내의 관계와 시간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A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말하는 이유는 그간 B와의 관계에 의한 것도 있고, B 역시 A와의 관계가 있으며, C와 D도 그간의 관계로 인해 말하는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알고있는 A의 이야기를 B에게 하자 B는 화를 내고, 내가 알고있는 C의 이야기를 D에게 하자 D는 조금 당황한다. 그런 다채로운 버전을 모두 들은 나는 과연 그 일의 진상을 모두 아는 걸까. 많은 직소조각들이 맞춰지긴 하지만, 여전히 뻥 뚫린 구역도 있다. 왜 C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나에게 말하고 있는 D가 거짓말을 한걸까. 이 역시 서로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상황에서 경험하고 인식하고 결론낸 다음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엄연히 다르지만 위에 말했든 결국 모두 진실이라는 걸까. 회사 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도 아니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할 일도 없으므로 나도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은 일, 내가 스스로 나를 끝냈다. 

직후 다른 일도 있었다. 또 다른 네 명, E, F, G, H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간 E와 F에게 들었던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G에게 다시 들었고, E와 F에게 들은 정보로 굳이 보정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결국 진실은 없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각자에게는 절박한 진실일 수도 있다. 50년을 살며, 20년을 직장생활을 하며, 현자처럼 깨우친 것들은 거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소소한 것들이 몇 개 있을텐데 그 중 하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란 없다는 것"이다. A에게 듣고 정말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 D의 이야기로부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을 수도 있다. 굳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저쪽에는 저쪽의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점점 더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배웠다. A부터 H에 이르는 사람들 중 누가 나와 평소에 더 가까웠는가도 큰 변수 중 하나다. 그 변수의 크기를 영향력이 없는 상태로 수렴하기란 쉽지 않다. 벌써 이 글에 나열된 변수만 해도 너무 많다. 어차피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걸 알 방도는 없다. 그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없다"고 대부분의 상황을 넘기면 그게 정답인 것 같다. 


by nixon | 2022/04/29 01:44 | 트랙백 | 덧글(0)
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다
서늘하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차가운 남자. 이런 남자를 매력적으로 그린 영화나 시리즈는 얼마든지 있다. 너무 오래된 레퍼런스이긴 하나 장윤현의 <접속>에 나오는 한석규 캐릭터를 보고 저렇게 불친절하고 생까는 사람이 멋진 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저런 직장인이 되어야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최근 레퍼런스로는 <나의 해방일지>에 나오는 구 씨(손석구)가 있는데 세상에 그렇게 퉁명하고 불친절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가 멋져보이는 건 또 사실이다. 내가 저런 남자라면 어떨까. 좋은 사람일까. 좋지는 않아도 매력 있는 사람일까. 

그러나 안다.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또 안다. 그들은 배우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멋지게 화를 낸다는 것이 과연 현실 직장에서 가능한 일일까. 자신의 할 말을 단 한 번도 웅얼거리거나 더듬지 않고 완벽히 쏘아붙인 다음 홱 돌아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이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건가. 노심초사하지 않나. 정말 자신이 백프로 정당하고 해야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자기 전 그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까. 그 장면을 기능적으로만 소비하는 영화나 시리즈물에서는 그걸로 지지부진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쏘아붙인 자와 쏨을 당한 자는 그냥 예전처럼 지낸다. 당시에는 정당한 감정의 분출을 계산된 대사와 행동, 그리고 그를 받쳐주는 카메라 앵글과 편집,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가. 2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한 나는 고만고만한 사람들 중에서 갑에 가깝다. 팀장이고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다. 그래서는 되고 안되고를 떠나 누군가에게 당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해대는 것이 더 쉽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늘 익숙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 못하는 혹은 탁월한 감정 컨트롤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줄곧 피가 거꾸로 솟는 평범한 중년일 뿐이다. 그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되도록 화는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맞다는 쪽이다. 화를 내봐야 쉽게 봉합되지 않고, 별로 안 친한 사람들과는 더 멀어지고 가까웠던 사람들과는 어색해진다. 그리고 자기 전, 또는 샤워 중 물줄기를 맞으며 그 순간을 떠올린다. 기분이 좋지 않다. 

남는 것은 친절뿐일까.

"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말이다. 비단 사랑하는 사람간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보편적인 관계에서도 친절이라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짧고 간단한 문장이다. 그리고 멋진 말이다. 종종 이 말의 위대함을 떠올리며 ㅇ모기관 직원 여러분에게 친절하게 대해본다. 아니 사실 나는, 늘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갑의 입장과 자각이 무엇이 중요한가. 그걸 보는 후임, 후배, 팀원들의 생각이 중요하겠지, 그러나 난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노력은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 

옆에 앉은 다른 부서 팀장인 M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생긴 게 중립적이다. 이 말을 들은 D는 배꼽을 잡았다. 천성적으로 따뜻함이 보일리 없는 나는 친절함을 보여주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 현실 속에서 사는, 배우의 피지컬과 외모가 없는 나는 감히 화를 낼 수가 없다. 중립적으로 생겨먹는 나는 친절을 만들어내야 한다. 뭐, 어려운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은 매우 당연한 것을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것이 최선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날 모든 것은 결론이 나지 않고, 모든 것은 나의 판단을 기다리며, 그런데 나도 잘 모르겠고, 모든 에러를 잡았다는 업체 메일을 본 직후 에러를 발견했던 오늘 같은 날.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며 옆 부서 직원이 벌써 세시 반이야, 를 외칠 때, 나도 같이 외치고 싶었던 날. 퇴근길 경의중앙선 전철 안에서 내내 자버렸다. 그러고보면 <나의 해방일지>의 삼남매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툴툴대는데 그렇게 밝을 때 집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야한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며 냉장고에서 아무렇게나 슥 꺼낸 화수브루어리의 경주라는 맥주를 처음 먹어봤는데 바이젠복이란다. 맛있다. 또 스포티파이에서 랜덤하게 음악을 들려주는데 그레고리 포터와 씨 로 그린, 니나 시몬으로 넘어가는 플레이리스트가 마음에 든다. 랜덤신이 내일도 친절하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 거니까. 


by nixon | 2022/04/26 00:09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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