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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머니가 70번째 생신을 맞이하신다. 70은 60과 달라서 그래도 몇몇 친척분들을 양수리로 초대해서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시작했다가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6남매이시고 그 아래 왕래가 있는 조카들도 꽤 되는 바, 게다가 그 조카(나에겐 사촌들)들이 모두 가족을 꾸리고 있으니 가족까지 데리고 온다면, 거기에 하는 김에 동네 어머니 친구분들도 함께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까지 발전되어 결국은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모르는 그야말로 잔치가 되게 생겼다. 아직까지는 거나한 고희연은 아닌 그냥 주위 사람들 모아놓고 식당에서 밥이나 먹자는 정도로 정리되고 있는데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술도 많이 나가게 될테고 내 지갑은... 아무튼. 5월은 그 날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하는 달이다. 날짜는 5월 말 경이고 식당은 이미 예약을 해놨다. 호젓한 강변 정원에 있는 어떤 식당의 별채를 통째로 빌렸다. 별채 자체는 낡고 지저분한 느낌이 있는데, 바깥 정원 쪽이 워낙 괜찮아서 날만 좋으면 반응은 좋을 거라 기대한다. 내일부터 당장 초대할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하고 올 수 있는 사람 수를 체크해야 하겠지. 그리고 손님이 많아지는 만큼 어머니의 새 옷도 한 벌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돌실나이같은 곳에서 적당한 생활 한복을 준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리고 친척 분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경관이 워낙 좋은 우리 집에 와서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는 걸로 코스를 잡고 있는데 그러자니 아직 미비한 집안 정리를 그 안에 완료해야 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이를테면 작년 여름 휴가 때 내가 (경기도) 광주까지 가서 사고는 아직 처박아두고 있는 페인트로 창틀을 칠해야 하겠고, 뒷뜰의 낡은 평상을 걷어 버리고 뭔가 다른 걸 놓자는 계획도 있고, 아직 거실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DVD와 CD들의 장을 이참에 짜야 하겠다는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렇게 되니 '그 날'이 오기까지 편한 일요일은 없을 것 같다는 강력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한 달 후면 바로 아버지 고희연이다.
재미있는 건, 혹은 불행한 건 어머니는 음력, 난 양력으로 생일을 하는데 올해 윤달이 끼어 어머니의 생신이 좀 미뤄지더니 어쩌다보니 내 생일과 똑같은 날이 되어버린 거다. 결국 난 내 생일을 완전히 잊어야 할판. 숫자로만 따지면 나도 만만치 않은 의미를 지닌 생일이긴 한데 조금 아쉽기도 하다. 아무튼 그건 모두 부질없고, 일단 그 날을 잘 넘기는 게 최대 목표다. 그 날 정신없을 걸 생각하면 지금부터 혼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이럴 땐 외동이란 게 힘들다. 준비는 완벽하게 잘 할 수 있으려나. 분명히 빵꾸가 날 거 같아. 나도 옷을 준비해야 하나. 아서라 돈이 없구나. 아 괴롭다. 프롤로그. 전날 밤. 잠실에서 레이디 가가 공연을 봤다. 끔찍하게 막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도로를 달리다 탄천 건너편의 서울의료원에 주차를 했다. 차는... 괜히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광클로 얻은 R석이었건만 여전히 레이디 가가는 저 멀리 새끼 손가락 한 마디만하게 보이고 댄서들도 저런 춤을 추고 있구나, 정도를 느낄 뿐 결국 대부분을 대형 모니터를 통해 봐야만 했다. 스테디움 공연이라선가 음향도 망했지만 그래도 잠실의 봄바람은 살랑살랑 시원했고, 엣지 오브 글로리와 본 디스 웨이를 직접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뻤고 즐거웠다. 관객 연예인으로는 노홍철과 김윤아를 봤다. 내가 있었던 바로 옆 블럭 R석은 공연 통틀어 단 한 명도 일어서지 않은 진기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음 날, 전주로 출발한다. 올해는 3박4일로 일정을 잡고 그 어느 때보다 느긋하게 쉬고 오기로 했다. 영화도 단 두 편만을 예매했을 뿐. 전주를 걷다 하루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정을 예상했다. 도착한 날. 매번 문이 닫혀 있어 시도하지 못했던 백일홍 찐빵집이 문이 열려 있었다! 아예 서울에서 네비 목적지를 '전주 백일홍 찐빵'으로 설정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백일홍 찐빵에서는 1인분 3,500원에 8개의 미니 찐빵을 주는데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크기도 재미있고 맛도 좋더라고. 그 자리에서 찐빵과 만두(만두는 고기 덩어리가 씹히는 느낌의 소였다)를 먹고 찐빵 일인분을 테이크 아웃 했는데 근처 홈플러스에서 이것저것 사며 결국 다 먹고 말았다. 숙소 가서 헛헛할 때 먹으려고 뜨겁지 않은 찐빵을 일부러 샀건만. 그리고 비로소 숙소를 잡고 (전주 영화제를 가는 분들에게 팁 하나. 숙소는 영화제라고 미리 예약을 잡을 필요는 없고,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의 모텔촌에 가서 찾으면 방은 늘 있다. 모텔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 시설도 크게 차이도 없고 터미널에서는 영화의 거리까지 셔틀이 있기 때문에 이동도 쉽다. 시원한 봄날 밤 걷고 싶으면 영화의 거리에서 마지막 영화를 보고 걸으며 중앙시장에서 진미집이나 오원집같은 야식집에서 야참을 먹고 다시 부른 배를 안고 터덜터덜 숙소까지 걸어와도 그리 무리가 되지 않는 거리다.) 좀 쉬다가 차를 몰고 나가 저녁을 먹으러 '정통우동'집에 들렀다. 여기는 기사식당겸 야식집인데, 우동이 특별하달 게 없을지 몰라도 늘 전주를 떠나면 생각나는 맛이랄까. 면발도 마음에 들고 조금 짭쪼름한 국물도 난 좋다. 흑미가 조금 섞인 김밥도 좋고 자장면도 굉장히 옛스러운 맛인데 그것도 맛있더라고. 메뉴도 딱 그렇게 세 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만족스런 저녁 식사를 하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부시장 한국닭집에 들렀지만 역시나 마감이 끝나 있었고, 별 생각 없던 조점례 피순대 집에는 웬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던지. 줄을 서서 먹고 있더라. 한옥마을 아무데나 차를 두고 길거리야 카페의 생과일주스를 먹으며 한옥마을을 산책하다 숙소에 돌아왔다. 첫날은 그렇게 아주 훌륭한 먹부림의 날이었다. 영화는 숙소 TV에서 <풀 몬티>를 봤다. 재미있게 본 영화였는데 또 봐도 재미있더라고. 첫날 밤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는 뭐였더라? 다음 날 느즈막히 일어나 '상덕카레'를 아침겸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늘 가면 문이 닫혀있거나 열려있더라도 다음 기회에! 로 미뤘던 식당이라 이번은 한 번 먹어보자고 간 곳. 매운카레와 부드러운카레만 있고 거기에 빵과 요구르트를 함께 준다. 그리고 6천원이면 아주 싼 가격. 집에서 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고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뭐랄까... 맛은 있지만 전주에서 카레를 먹는 게 어울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카레라는 게 워낙 하는 집이 많으니까 그렇게 특별한 맛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저렇게 복잡하게 만족하며 나와서는 바로 앞의 경기전 산책을 했다. 아 언제 봄은 오는 거야, 하면서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맞았던 기억이 바로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나무에는 잎들이 무성하게 나있었다. 딱 청년의 시기라 할 수 있는 싱그러운 나무들이 있는 경기전 산책이 즐거웠다. 그리고 작년에 어느 음식점 담벼락에서 만났던 귀엽고 지저분한 강아지를 올해도 볼 수 있을까 하고 2일 동안 그 근처를 뒤졌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 한옥마을을 좀 둘러 보다가 친구를 잠깐 만났고, 그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느긋하게 쉬고 있는 강아지들도 보고, 사진도 찍고 그러다 정작 영화 시간이 늦어 허겁지겁 영화의 거리에 도착. <자코모의 여름>을 보았다. 허겁지겁 도착한 만큼 초반을 기똥차게 졸아버렸지만 이 영화만큼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영화도 드물기에 다행히 내용은 다 접수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애틋함을 느끼기에는 난 영화가 너무 심심했다. 애틋함이 느껴지려는 찰나 영화는 암전되고 크레딧이 올라가더라. 상덕에서 먹은 카레가 워낙 많았나, 아직도 배가 부른 상태에서 걷다가 풍년제과에 들러 이런저런 빵을 샀다. 풍년제과는 오래된 빵집인만큼 오래된 고전빵들이 맛있다. 단팥빵, 크림빵, 고로케. 이런 것들. 후회하지 않을 거다. 그리곤 영화의 거리에서 처음 본 '두 쉐르'라는 프랑스 디저트 카페. 제과업 R&D 파트에서 일하던 쌍동이 자매가 전주에서 야심차게 문을 연 가게였는데 괜찮았다. 다음에 또 가볼 용의가 있다. 그 즈음, 나를 헛갈리게 만든 유피디라는 존재가 있었으니. 전주에서 나눠준 홍보책자 중에 전주MBC에서 십몇년간 맛집 프로를 담당한 유피디가 있는데 그 사람이 추천한 식당 리스트가 있는거다. 거길 보니 콩나물국밥집을 제외하곤 당최 알 수 없는 식당들만 추천해놓고 있으니, 게다가 차도 있겠다 이 사람이 추천한 식당을 한 번 가볼까? 하고 있는데 워낙 정보가 많으니(내가 원래 알고 있던 집 + 유피디 추천집) 망설이게 되는 바. 오히려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면서 저녁은 유피디가 '추천하지 않은 생선구이집' '만다린'에서 먹게 되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그냥 평범한 정도. 그래도 주인장들이 친절해서 좋았다. 숙소에 들어가 기린이쯔방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역시 느즈막히 일어나 어제 산 풍년제과 빵으로 아침 허기를 달랜 다음 셔틀 버스를 타려고 나왔지만 이 날도 시간이 맞질 않아 (전날에는 차를 몰았고) 택시를 타게 됐다. 먹부림 기세도 당당하게 택시에 앉아 가고자 한 곳은 웨딩거리의 홍콩반점. 거기가 물짜장의 원조라고 하고 볶음밥이 너무 맛있게 생겼고 탕수육도 꿔바로우 스타일로 괜찮다는 거다. 그렇다 유피디가 추천한 집 중 하나였다. 홍콩반점 근처 그 유명하고 유명한 성미당이 있어서 택시기사님에게 아저씨 성미당으로 가시죠 했더니 시크하신 기사님은 성미당이 어디죠? (혹은 뭐죠? 라는 뉘앙스) 라고 되받아서 많이 당황하며 거기 풍년제과 웨딩의 거리 횡설수설하며 목적지를 알려줬다. 결국 웨딩의 거리 앞에 택시가 멈추며 성미당 간판을 본 기사님은 아 여기가 성미당이네요, 했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관광객들이 많은 시기가 아니면 성미당은 아무도 택시타고 가지 않는 뭐 그런 곳이란 말일까. 택시 기사가 모르는 비빔밥집의 명가를 뒤로 하고, 택시부터 시작된 이상한 기운은 결국 홍콩반점 앞에 내려진 셔터와 당분간 쉰다는 종이쪼가리로 더 증폭되었다. 대안은 영화의 거리에 있는 중국집 '일품향'이었고 거기서 직접 만든다는 군만두와 물자장을 먹었으나 군만두는 좀 식어있었고 물자장은 그날 따라 짰다. 전주 중국음식 대실패. 그런 와중 회사에서는 박스오피스 정보를 업데이트 해야하는 데 어떡하냐는 전화가 와서 PC방을 뒤졌으나 이놈의 영화의 거리에는 PC방이 다들 숨어 있었다. 노래방도 DVD방도 있는 이 북적이는 거리에 PC방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결국 어느 카페에 들어가 (씨네21 강기자를 만나고) 쉬면서 PC 작업을 했다. 좀 돌아다니다 남부시장에 갔으나 배는 고프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 쌓여있는 한국닭집의 닭강정을 그냥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올 수밖에 없었던, 타이밍이 참 맞지 않는 남부시장과 그렇게 이별을 한 후, 멀지 않은 곳, 다리 위의 긴 정자에 누워 한 숨 자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강기자가 페북에 올렸던 '외할머니 솜씨'라는 줄이 길게 늘어진 팥빙수 집에 들어가 팥빙수를 먹었다. 싸고 맛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렇게 인상적인 맛인가, 그건 모르겠다. 가격대비 맛이라고 굳이 이야기 한다면 인상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바깥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있으려니 좋은 날씨에 한가롭게 앉아있는 그 자체가 즐겁긴 했다. 옆에 핸드폰으로 오락을 하는 꼬맹이와 그걸 그냥 냅두는 아줌마들만 없었다면 더 상쾌했을 것이나 인생은 그렇게 완벽할 순 없는 것. 영화는 8시반인데 더이상 할 일이 없어서 결국 다시 숙소로 가서 차를 끌고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남서쪽> 관람. 늘 그렇듯 초반을 조금 졸긴 했는데 이 이상야릇한 흑백영화가 난 참 마음에 들어버렸다. 화면비도 3.6:1로 엄청난 시네마스코프인데다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묘한 이야기가 굉장히 좋더라고. 올해 전주의 영화가 되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시간이 꽤 늦은 밤. 전북대학 후문으로 가서 저녁거리를 사기로 했다. 그 근처 실한 김밥집이 있어서 거기서 김밥을 샀는데 결론은 그냥 평범. 무엇보다 마치 전북대의 명물인양 있었던 북데리아 햄버거가 완전 시망이라 전주의 먹부림 점수를 와장창 낮춰버리고 말았다. 숙소에 돌아와 평범한 김밥과 칭따오를 마셨다. 마지막 날. 전주 일정은 모두 끝났고, 군산을 갈까 내소사를 갈까 하면서 역시 이 날도 느즈막히 일어나 결국은 내소사에 가게 되었다. 이날 아침은 전날 돌아다니며 산 '안전빵'이라는 빵집의 소시지빵과 고로케였다. 의외로 맛도 괜찮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엄청나게싼 가격. 거기 스티커에는 만원에 빵 30개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동행인은 그러더라. 우리 빵집이면 만원에 두 개도 못살 수 있다고. 그렇게 싼 집인데 맛은 그에 비해 괜찮았다. 아무튼 안전빵으로 안전하게 아침을 먹은 후, 가게 된 내소사는 그렇게 가까운 곳도 아니고 되려 서울에서 더 멀어지는 곳이었는데 일단 가니 참 좋더라. 전주도 도시라 내소사라는 공간은 4일간 휴가 중 정말 휴가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전나무숲길도 좋았고, 내소사 안의 오래된 목조 건물도 좋았다. 거기서 천천히 산책을 한 후 근처 맛집(그래 여기까지 와서도 또 맛집 찾았다)인 젓갈정식을 곰소항에서 먹었다. 정말 젓갈들만 왕창 반찬으로 나오더라. 괜찮았다. 한 번쯤 먹어보기로는. 하지만 다 먹고나니 속이 좀 맵더라고. 그리고 근처에서 젓갈을 좀 사기도 했다. 그 중 흙냄새가 난다는 민물새우젓인 토하젓이 신기하고 맛있더라. 여기까지다. 이번 여행. 그러고 미친척 고속도로로 안오고 부안에서 서울까지 국도로만 왔다. 주행시간 5시간. 고속도로보다 1시간 정도? 고속도로가 막혔다고 가정하면 30분 정도 더 걸린 시간인데 그만하면 선방한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한 마디 덧. 전주 시내 운전자들아! 너무 거칠고 매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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