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반말을 해야 한다
드디어 노트북이
매년 올해는 이것 좀 해보겠다고 결심 비슷한 걸 하는 게 글을 써보겠다는 거였다. 페이스북에 시시콜콜 장문의 글을 쓰기도 싫고(누가 읽지도 않을 거고), 어쩐지 거기는 그냥 자체 검열을 과하게 한 글만 올리게 된다. 그에 비해 블로그는 나만의 장소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좀 더 개인적이고 좀 더 감정에 치우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늘 그런 글쓰기랄까... 그게 몇 년째 안되는 것의 핑계는 집에 PC가 없다는 거였다. 하나 사자니 돈 들고. 노트북을 사야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돈 들고. 그 돈이 듦에 대한 허들을 넘지 못하고 한해 두해 넘기다보니 그냥 그렇게 아무 것도 쓰지 못했고, 블로그는 폐기되다시피 했고, 기껏 모바일폰으로 근근이 써오긴 했는데, 난 도무지 손가락이 아파서 폰으로는 긴 글을 쓰기가 힘겨운 거라. 그런 와중 회사에서 아주 고마운 사람이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무상을 나에게 줬다. 물론 이 노트북을 받은지도 벌써 보름이고 보름만에 첫 블로깅을 하는거니, 생각보다는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뭐 늘 그렇지. 없을 때 절실하지 있은 다음부터는 바로 심드렁해지지 않던가. 

블로그도 블로그지만, 습작처럼 끼적대는 글, 그러니까 단편이라도 종결을 보는 작은 픽션도 써보고 싶다. 사실은 이게 내가 매년 세웠다가 늘 1도 실천하지 않았던 목표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어느 정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익숙함을 되찾는 것, 그리고 그 다음 어찌 되었던 뭔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짓는 것. 그것이 올해가 가기 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그 글을. 그 부끄러운 것을. 누구에게 보여준단 말인가. 라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걱정은 일단 접기로 하자. 
by nixon | 2018/07/16 23:55 | 잡담 | 트랙백 | 덧글(0)
화분 1971
하길종 감독의 <화분>은 왜 푸른집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푸르지 않은 집에, 여자 셋과 남자가 사는 데 그 집에 또 다른 젊은 남자가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현마(남궁원)와 그의 아내 애란(최지희)이 살고있고 애란의 여동생 미란(윤소라)도 같이 산다. 그 집에 식모(여운계)도 있다. 암튼 이 시절의 영화를 보면 가난하던 여유가 있던 식모는 필수 가족의 구성원 쯤이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현마가 한 남자를 데리고 오는데 이름은 단주(하명중), 제법 잘생겼다.

여기서 관계가 좀 복잡해진다. 단주가 등장하기 전 푸른집의 인간 관계는 애란과 식모가 모두 현마를 사랑하고 어찌보면 미란마저도 현마를 애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모든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현마는 정작 단주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여기서 단주가 나타나자 정신을 차린(?) 미란은 단주를 좋아하게 되고, 단주도 미란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단주는 동시에 현마도 사랑하는 것 같다. 단주와 미란의 관계를 눈치 챈 현마는 미친듯 분노하고 그러니까 질투에 눈이 멀어 온갖 폭력을 행사한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남자라는 존재는 푸른집에서 절대 권력자로 설정된다. 그에 비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단주는 나중에 푸른집의 창고에 버려지게 되는데 마치 예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도 나오는데 의도된 건지는 모르겠다.

말은 그렇다. 이 푸른집을 통해 당시 유신을 은유했다고. 그만큼 폭압적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그 공간과 그 권력자는 정말 하루 아침에 망한다. 말 그대로 정말 하루 아침이다. 전날 밤에는 뻑적지근한 가든 파티를 열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빚쟁이들이 몰려와 집 안의 온갖 물건들을 빼앗기게 된다. 충격적인 건 정말 누런 물이 출렁이는 요강까지 가져가는 빚쟁이가 있었다는 거. 그리고 저 멀리 애란으로 짐작되는 여자가 요강! 이라고 소리친다. 진심 아까웠던듯.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남궁원과 하명중의 동성애 관계는 지금으로도 파격적일 걸 생각하면 당시 어떻게 설정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배우를 어떻게 설득했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그 둘이 게이 커플로도 어느 정도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좀 더 분위기가 묘하다. 야하진 않지만 둘이 몸을 비벼대는 장면도 좀 나오고 나중에는 남궁원이 하명중의 뒷목을 (마치 뱀파이어가 피를 빨듯) 물어버리는 나름 기괴하게 애로틱한 장면도 나온다. 영화를 다 보면 질투에 미친 남궁원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참, 영화의 처음. 미란이 늦은 생리를 하고 욕조에 붉은 물이 있는걸 보고 언니라는 작자가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오미자물이라느니 화챗물이라느니 웃으며 떠벌이는 장면도 요강 절도만큼이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일로 모욕감을 느낀 미란이 집을 나가고 그 뒤를 단주가 쫓으며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데...

by nixon | 2018/06/11 00:06 | 영화 스크랩 | 트랙백 | 덧글(3)
저스티스 리그 2017
영화는 <배트맨 vs. 슈퍼맨>에서 이어진다. 슈퍼맨은 죽어있고 배트맨은 뭔가 위함을 감지하고 초능력자들을 수소문해 그룹을 만드려 한다. 원더우먼이 일찌감치 섭외되었고, 물과 대화하는 아쿠아맨, 빨리 달리는 플래시, 마더박스와 교감하는 사이보그를 모은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나 마더박스 3개를 다 모아 지구을 파괴하고 왕이 되려는 빌런 스테픈울프가 있다. 스테픈울프 옆에는 그를 지키며 상대를 공격하는 거대한 날개 있는 벌레맨들이 떼거지.

배트맨이 어찌어찌 히어로들을 모으긴 하는데 힘들게 모아봐야 스테픈울프에겐 다 덤벼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빌런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나 한건 아닌데 그냥 맺집이 엄청나게 좋은 걸로 설정이 되어있는 것 같다. 아무리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때려대도 상처 하나 안 입는다. 그런데 그건 히어로 쪽도 마찬가지. 다소 밀리기는 하는데 아무리 내팽게쳐지고 맞고 추락하고 해도 상처 하나 없다. 그러니까 애꿎은 건물들만 망가지며 끝도 없이 순환하는 소모적이며 지루한 싸움만 계속 되는 것이다.

그 와중 어찌어찌 마더박스의 힘으로 배트맨이 슈퍼맨은 살려낸다. 이게 새로운 국면이긴 한데 사실 그 이후로도 똑같다. 다른 히어로들이 다 덤벼도 우아하고 여유있게 그들을 제압하던 슈퍼맨이 스테픈울프에게 타격을 가하면 그 파워는 압도적이긴 하나 스테픈울프는 또 비틀거리긴 하지만 아무런 상처 없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구 지겨워라.

결국 마더박스 세 개가 합체되기 직전 힘으로 분리시킨 후 도끼처럼 생긴 무기를 잃은 우리의 빌런은 자기 편이었던 벌레인간들에 휩싸여 공중으로 올라가 멸망 비슷한 걸 한다는 결말이다.  도무지 두 시간 꽉 채운 이 러닝타임 동안 별다른 플롯 없이 싸우기만 하는 영화를 본 셈인데 지겨웠다.

빌런이 물러난 후 그의 황량한 시뻘건 색으로 DI를 해놨던 공간이 서서히 정상을 찾아가며 알 수 없는 식물들로 뒤덮이는데... 정말 해괴한 식물들이 엄청난 속도로 땅에 피어나는 걸 보고 너무나 징그러웠는데 영화에서는 그게 희망의 은유 정도로 적용된다. 도저히 그렇게 봐지지가 않는 서던리치 시리즈 ‘소멸의 땅’에나 나올 법한 그런 식물들이었지.

by nixon | 2018/06/10 23:48 | 영화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돼지꿈 1961
한형모 감독의 <돼지꿈>은 영도주택(임대주택)에
사는 서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인 김승호는 고등학교 선생. 박봉이지만 따박따박 급여를 타오는 소심하고 성실한 남자다. 아내 문정숙은 어떻게서든지 살림이 폈으면 좋겠어서 안달하는 중. 그리고 아들 안성기가 있고 식모(최지희)가 있다.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60년대 전형적인 가족 코미디물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 하나둘 유혹의 손길이 뻗치는데 그 과정을 보는게 상당히 불안하다. 김승호가 돼지꿈을 꿨다며 좋아하던 날 이웃집에서 새끼돼지를 키워보라 하는 것도, 부산에 사는 친구 이예춘이 밀수를 하는 찰리(허장강)를 데리고 오는 것도 뭔가 이 악의없이 사는 가족에게 꼭 사단이 날 것만 같다는 촉이랄까. 촉도 아니고 당연히 그런 귀결이 날 수밖에 없는 거지.

영화를 딱 절반으로 나눴을 때 앞 부분에 해당하는 이 모든 이야기는 아침부터 밤까지 딱 하루의 이야기다. 김희갑이 영도주택 월세를 받아내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월세를 독촉하러 왔다가 김승호와 함께 술을 진탕 마시는 것도 같은 날이다. 그러니까 <돼지꿈>은 이야기의 포석을 깔기 위한 플롯을 단 하루에 촘촘히 박아넣은 것이다. 그리고 약 두어달 후 김승호 가족은 사기를 당하게 되고 집문서까지 잡히며 꾼 돈 마저 모두 날아가게 되었다. 결국 네 분수를 알아라, 영화 대사로도 나오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인데 마지막, 찰리를 잡아오겠다는 아들 영준(안성기)이 교통사고를 당해 끔찍한 시체로 돌아오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무지막지한 결말이다. 60년대 초, ‘당신 자리에서 분수를 지키고 살라’ ‘욕심내지 말고 살라’라는 것이 그토록 혹독하게 알려야 할 그런 명제였을까. 오프닝 크레디트의 발랄함이 무색하게 영화는 어둡고 무겁게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 후 ‘끝’ 크래딧이 나오는 컷의 그림도 오프닝에서 따왔는데 그 발랄함이 얄궂을 정도다.

이 영화 찍을 당시의 김승호는 나보다도 몇 살이나 어린데 영화로는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 중간, 김승호의 술 친구로 구봉서가 까메오 처럼 잠깐 나온다.
by nixon | 2018/06/10 23:30 | 영화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유전 2018
늘 꿈꿔오던 영화가 있는데 깜짝 놀래키는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다. 그래서 <샤이닝>을 그렇게 좋아한다.  단점 많은 <곡성>에 그런 이유로 호감이 있는 것이다. 물론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것도 좋은 기술이다. 하지만 무서움과 깜짝 놀래키기가 등가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관객의 말초를 자극하는 영화가 있다면 분위기로 몰고가는 공포물도 어딘간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 대답이 <유전>이었다.

할머니가 죽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후 가족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아주 무섭게 보여준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끌고갈건지 초중반에는 잘 짐작되지 않는다. 조금 심심하기도 하고. 콜린 스탯슨의 그로테스크한 음향 같기도 한 음악이 이 부분의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준다. 전봇대와 관련된 큰 사건이 지나간 후 가족의 파국은 좀 더 가까워지고. 누구에 의한 파국인지는 말미에 알려진다.

토니 콜레트의 기괴하고 과장된 표정 연기, 감정의 분출은 이 영화 속 또 하나의 효과적 공포 장치다. 그리고 그의 최후는, 이 영화가 잔인한 장면이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매우 끔찍하다. 단편 시절부터 ‘외부에서의 침입’에 일가견이 있었던 감독 아리 애스터는 숲속 외롭게 있는 큰 집에 가족 외에 무엇인가가 아니면 그 가족 중 하나에 기괴한 것이 씌어 가족이 난도질 당하는 과정을 매우 솜씨있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조금 느린 것 같았던 속도에 조금씩 엔진을 걸어주며 하지만 끝까지 과속은 하지 않으며, 지옥의 우아함을 관객들이 느끼게 해준다.
by nixon | 2018/06/10 10:47 | 영화 스크랩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