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반말을 해야 한다
콘텐츠 섭식의 게으름
지금 ㅇ모기관에서 내가 하는 일 중, 기획 쪽이 있는데 그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들이란 죄다 10~20대까지 섭식한 콘텐츠, 주로 영화에 기인한 것들이다. 그래 30대 초반까지 섭식한 거라고 해두자. 그래도 공급 없는 십년이다. 그러다보니 바닥이 드러나고 뭐 더 새로운 것이 나에겐 더이상 없으며, 그러나 이 세상에는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언제나 넘쳐나고 있지. 이를테면 미드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열심히 챙겨보던 시절이, 사실 미드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였는데, 지금은 미드 뭐 걸출한 것도 없지, 역시 미드는 그때 미드가 갑이지 이래봐야 난 지금 게을러서 아무 것도 안 봐요, 하는 꼴인 것이다. 언제까지 <엑스파일>이고 언제까지 <프렌즈>에 <24> <닥터 하우스> <CSI 라스베가스 그것도 그리썸 시절>이란 말인가. 꼭 일 때문은 아니더라도, 내가 요즘 즐긴다고 하는 것이 너무 스마트폰의 캐주얼 게임에 몰입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책도 읽고, 그러나 그놈의 책이란 건 점점 나와 멀어지고 있어서 억지로 잡을 수 있는 개념인 건지 그것조차 모르겠지만,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음악도 듣고 만화도 보고, 그런 콘텐츠 적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요즘, 아니 실은 십년째 쭉, 그러나 요즘 유독 하고 있다. 마침 한 달에 한 번 부천만화영상진흥원에 가서 웹진 편집회의를 하는데, 일 핑계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일 핑계를 대는 것은 얼마나 유용한가, 웹툰 몇 개를 추천받아 요즘 읽고 있다. <미지의 세계>는 근사하지만 계속 동어반복이 질리고, <스퍼맨>은 정말 웃기고 재밌다. <하이브>는 굉장히 각잡고 그린 만화 같은데 등장인물들이 너무 비현실이랄까, 남자들은 다 복근에 여자들으 다 가슴이 크며, 20대 후반의 주인공은 대기업에서 과장이고, 그리고 며칠 생고생을 하니까 거의 람보가 되어있다. 말이 되나? 그래서 의리로는 보고있지만 그냥 그렇다. 애들에게 인기가 있을 거 같은 <외모지상주의>가 차라리 말초적이고 재미있다. <기기괴괴>는 내가 좋아하는 괴담류라 좋긴한데 에피소드별로 기복이 심하다. 역시 '성형수'가 최고다. 일단 콘텐츠 섭식을 가장 문턱이 낮다는 웹툰부터 하는 중인데, 이러니까 너무 의무방어 하는 거 같아서 마음에 안 들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 가능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by nixon | 2016/07/20 11:23 | 잡담 | 트랙백 | 덧글(2)
전철의 남자
매일 같은 시간의 전철을 타고 통근하다 보면 역시 매일 나와 같은 전철을 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중 그냥 중년의 아저씨가 있다. 내 나이 또래 아니면 약간 어린 수준이 아닐까 하는데. 바지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아웃도어류 의상을 입고 있고, 가방도 배낭 같은 건데 상당히 뚱뚱하고 크다. 옆 주머니에 투명한 텀블러를 꽂고 있는데, 검은색에 가까운 액체가 늘 들어있다. 무슨 차 종류일 텐데 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평범한데, 한쪽 귀에 귀걸이 두 개를 달고 있다. 귀걸이를 제외하고는 스타일 적으로 주목할만한 부분이 전혀 없어 그래서 더 희한하다. 그리고 매일 책을 읽는데 늘 SF다. 얼마 전 까지는 <마션>을 읽더니 오늘부터는 래리 니븐의 <플랫랜더>를 읽고 있었다. 스마트폰도 거의 안 본다. 그리고 그 우람한 배낭에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뭔가 호감이다 이 아저씨.
by nixon | 2016/06/22 11:28 | 잡담 | 트랙백 | 덧글(2)
절실하다
어제 자려고 1년 여 만에 꺼낸 풍기 인견 반바지를 입었는데, 작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몸에 끼임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견은 신축성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으므로 더더욱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건데, 그때만 해도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운동을 시작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뜬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꿈에 내가 차를 몰았는데, 나를 비롯해 5명의 장정들이 타고 있었고, 그러다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 앞에 주차된 차를 들이받는 꿈을 꾸었으므로 현실로 되돌아오는 편이 훨씬 나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6시 25분 알람 소리를 듣고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끈 다음 다시 자세를 고쳐 누워 나머지 쪽잠을 택했으니, 잠을 깨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내 몸을 일으켜 운동이란 것을 하러 나가는 그 행위 자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다 지금도, 내일의 나는 기필코 운동을 시작할 거야, 라고 결심하지만 난 알 것 같다. 내일 아침 6시 25분의 내 행태가 어떨 것임을. 하지만 워낙 절실해서 달려야는 겠는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고, 작년에 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아침 조깅을 했는지 참으로 미스터리한 것이다. 일단 최초의 그 힘듦을 어떻게든 극복해내면 그다음부턴 조금씩 나아지려나. 하지만 지금도 기억하지. 5km를 뛰는 그 괴로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뛰고 나면야 쾌감이 있지만 그 과정 어쩔 텐가. 그리고 살이란 건 그리 쉽게 빠지지도 않지. 왜 찌기는 쉽고 빠지기는 힘든가. 왜 부정적인 것은 쉽고 긍정적인 가치는 힘든가. 고달픈 중년의 남자 인생. 

by nixon | 2016/06/14 14:34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아가씨
박찬욱의 <아가씨>를 보았다. 재미있었다. 



스포일러.
by nixon | 2016/06/08 10:00 | 잡담 | 트랙백 | 덧글(3)
데뷔
이해영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을 보고 산골토크(이름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를 하기로 했는데 함께 이야기하기로 했던 사람(이경미 감독)이 갑자기 일이 생겨 참석할 수가 없다고, 나보고 갈 수 있냐는 거였다. 영화 보고 무대 위에서 토크하는 관객과의 대화라는 걸 내가 한다니,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내가 뭐라고... 좀 생각하다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운 경험이란거에 사실 좀 끌렸다. 물론 난 그 순간 긴장해야하고 좀 떨어야하고 그런 불편함을 겪겠지만 모든 첫번째는 다 그런거니까. 하고나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른 영화인들에게 좀 더 물어보고 정 없으면 내가 가겠다고 말했고, 결국 정 없었고 나는 그렇게 합류하게 되었다. 조지훈 프로그래머와 통화를 하며 이렇게도 연락을 하게 되네요(그 전까지는 내가 원고를 청탁 독촉하는 관계) 하면서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되냐고 해서 한국영상자료원 경영기획부 과장인데 너무 재미가 없죠 하며 둘 다 웃었지만 참 내가 별거 없다 싶더라.

스크리너를 받아 사무실에서 영화를 봤다. 그러면서 메모도 좀 하고 이야기 할만한 것들을 만들어봤다. 막차를 타고 퇴근하며 전철 안에서 머리속으로 한 번 더 정리를 해보고 나머지는 영화제에서 다시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기로했다. 처음은 늘 성실한 법이다.

다음 날 무주산골영화제에 도착했다. 무주라는 공간이 나에겐 처음이었다. 좋은 곳이었고 소박한 영화제였다. 첫날은 개막 공연을 보고 술을 마셨고 그 다음 날은 밥을 먹고 뜨겁고 맑은 한가로운 여름 낮을 아무것도 하지않고 보내다가 운명의 시간 네 시, 영화를 시작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났다. 어두운 무대 앞에 원탁과 의자 두 개와 마이크 두 개, 물 두 개가 놓여있었다. 난 이제 거기에 앉아 이해영과 함께 이 영화에 대해 수십분 동안 뭔가 관객들에게 말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세상에... 그 무심한 원탁을 보며 내려가는데 그때가 제일 떨렸다. 다행히 극장은 무척 작았고 관객들도 많이 나가 굉장히 오붓한 규모라 긴장이 그나마 덜 되었지만 자료원 직원이 관객으로 앉아있었는데 아는 사람, 그것도 회사에서는 후배 직원인 사람이 쳐다본다 생각하니 그건 또 긴장되는 것이었다.

이해영 감독이 능수능란하게 토크를 이끌어나갔다. 참 말도 잘하네 이놈은. 암튼 난 내가 말하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상황에 맞게 꺼내놨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면 관객들이 먼저 불안해하기 시작하니까. 난 이해영을 보조하며 최대한 말의 논리를 만들어내며 어떻게든 무난하게 종결지으려 애썼고, 말이 빨라지지 않게 하려 무진 노력했다. 여유있는 척 관객도 보고 이해영도 보고 했지만 막 마이크 없이 말하기도 하고 같은 단어만 계속 반복하고... 그랬다. 그렇다고 아주 못한 것 같진 않고 처음인데 그만하면 괜찮았다 싶은 정도 아니었을까. 이해영은 잘 했다고 해줬다만.

첫 경험이란 게 늘 그렇다. 하기 전 뭔가 준비를 하며 시간을 써야하고, 긴장하며 불편함을 감내해야하며, 어지간하지 않는 이상 아주 좋은 성과는 힘들고. 그래도 그렇게 끝내고나면 새로운 거 하나를 해본 거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이 드는 것. 첫 관객과의 대화에서 받은 첫 질문은 '이 영화를 부산에서 보고 그 때 너무 졸아서 이번에도 봤는데 또 졸았다. 이 영화를 지루하게 본 내가 잘못된 건가 다른 분들도 그러신 건가 모르겠다' 는 매우 귀여운 질문이었다. 다행이지뭔가.

산골토크를 끝내고 무주에서 유명하다는 어죽을 참 맛있게 먹고 바로 이해영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어죽이 참 맛있더라.
by nixon | 2016/06/05 02:18 |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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